지난 1일 저녁 11시 시작된 토트넘 핫스퍼와의 칼링컵 결승전에서 90분 풀타임과 30분의 연장전을 모두 소화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벤 포스터가 갑작스레 아이팟을 꺼내 뭔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듣고 싶은 음악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고, 우리나라로 치자면 실시간 인기검색어에 자신의 이름이 올랐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날 포스터가 봤던 것은 토트넘 핫스퍼의 페널티킥 동영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나이티드 골키퍼 코치인 에릭 스틸의 작품이다. 포스터는 경기가 끝난 뒤 가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하라가 키커로 나서면 등을 꼿꼿이 세우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러면 상대가 왼쪽으로 공을 찰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라며 칼링컵 결승전에서 나온 승부차기 선방이 그저 요행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토트넘이 경기가 끝난 뒤 "운이 없었다"라며 자신들의 불행(?)을 원망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에릭 스틸 코치가 아이팟 아이디어를 냈다. 블랙번을 떠나 유나이티드로 왔을 당시부터 그는 아이팟을 즐겨 사용했다. 원하는 동영상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팟은 정말 환상적이고 유용한 도구다" 이날 경기서 에드윈 반 데 사르를 대신해 팀의 골문을 지킨 벤 포스터의 말이다.

아이팟을 제조한 애플사(社)는 지난 1997년 CEO인 스티브 잡스의 주도하에 'Think Different'라는 상업 광고 캠페인을 벌여 상당한 재미를 본 바 있다. 비록 2005년 중단된 캠페인이지만 지금도 애플과 맥 그리고 아이팟을 언급할 때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하는 유명한 문구다. 지난 2006년 독일 대표팀의 옌스 레만 골키퍼가 자신의 양말 속에 상대팀 선수들의 슈팅 습관이 적힌 쪽지를 넣어뒀던 점을 생각해보면 유나이티드의 팬들로서는 새삼 애플사의 'Think Different'라는 슬로건이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벤 포스터는 이날 경기에서 MOM(man of the match)을 수상하며 한층 배가된 우승의 기쁨을 누렸고,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번 시즌 전무후무한 퀸투플 크라운 달성에 필요한 우승 타이틀 하나를 더 보태며 지금까지 이어온 자신들의 순항을 계속할 수 있었다. 감독과 11명의 선발 출전 선수 그리고 7명의 후보 선수들에게 각각 하나씩의 칼링컵 우승 메달을 나눠주고 몇 개나 남았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골키퍼 코치인 에릭 스틸의 몫이 되어야지 않을까.

다 나눠주고 그래도 하나가 남는다면 그건 애플의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보내도 좋을 일이다. 벤 포스터가 제이미 오하라의 슈팅을 막는 당시의 동영상과 함께 말이다.
  1. 석유맛사탕
    2009/03/03 12:46

    와.. 페널티킥까지 저렇게 상세하게 연습할 줄이야;;
    놀랍네요 저렇게해서 정말 상대편의 흐름을 읽고 막아내면 얼마나 짜릿할까요

    • BlogIcon 레이니돌
      2009/03/0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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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차기를 요행으로 보는 사람도 많지만, 골키퍼와 코치들은 상당한 공을 들인다고 하더군요. 평소 선수의 슈팅 습관에서부터 특유의 전술까지 존재한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

  2. BlogIcon odlinuf
    2009/03/03 16:37

    골키퍼는 그저 골 막는 연습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상대 선수 킥 습관까지 분석하는 줄이야.
    오른쪽에 못보던게 하나 보이는군요. 축하합니다, 레이니돌님. ㅎㅎ

    • BlogIcon 레이니돌
      2009/03/0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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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달고 싶었던거라 하나 달아두었습니다. 크기가 사이드바에 맞지 않아 조절해서 제 계정에 올린 뒤 다시 적용하는 수고까지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고맙습니다. :)

  3. BlogIcon 붉은낙타
    2009/03/03 17:08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
    기술과 스포츠의 조화리니..ㅎㅎ 흥미롭군요 ^^

    • BlogIcon 레이니돌
      2009/03/0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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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팟 클래식인지, 아니면 터치인지 알아보고 싶었는데 좀처럼 찾을 수가 없더군요. 아무래도 용량이 더 큰 클래식이 아닐까 싶은데, 그 센스와 열성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

  4. BlogIcon 지호
    2009/03/04 00:04

    농담으로 "승부차기시 아이팟과 골키퍼의 수비성공에 대한 관계"라는 논문을 써도 괜찮을것 같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피파에서는 경기장위에서는 어떤 영상기기를 사용하는것을 금하려고 하는 분위기인지라 약간 논란의 소지가 있긴하네요... 물론 잉글랜드FA가 문제없음으로 이미 종결지었긴 하지만요.. http://uk.reuters.com/article/topNews/idUKTRE52158020090302

    • BlogIcon 레이니돌
      2009/03/04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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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조금 다르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기장 위에서 심판의 판단과 권위를 존중한다는 의미로 리플레이 화면 등의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 FIFA의 입장인데... 이것이 비록 '경기장 위에서'라는 조건이 있기는 하나 결국 경기의 연장선인 기술적 부분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 딱히 잡음이 생겨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시대가 많이 바뀐만큼 이것에 대한 FIFA나 UEFA 차원의 종합적인 토론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5. 축구사랑
    2009/03/04 10:00

    셋트 플레이시 움직임도 그렇고, 페널티킥 전술도 그렇고
    여러가지로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들이 많네요.
    그렇기에 축구가 더욱 더 아름답고 멋져 보입니다.

    • BlogIcon 레이니돌
      2009/03/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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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첼시전에서 나온 비디치와 베르바토프의 세트플레이 전술도 그렇고, 이번 시즌 참으로 흐뭇한 유나이티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감독의 연륜이 느껴지는 전술과 팀 운용에, 선수들 또한 이것을 잘 이해하고 따라주니 팬으로서 그저 기쁠 따름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