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현이 2군 경기 출전을 자청했다" 지난 3일 국내의 언론들은 이렇게 보도했다. 풀럼과 에버튼전으로 이어지는 리그 2경기서 출전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김두현이 직접 감독을 찾아가 자신의 2군행을 자청했다는 것이다. '특유의 열정' '부활의 의지' '경기감각 위한 결단' 등 김두현의 이번 2군행을 포장하는 말들은 많다. 그러나 정작 소속팀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이하 알비온)에서 김두현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인 위치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은 찾아볼 수 없다. 온통 2군행을 '자처'했다는 김두현이 금방이라도 1군으로 복귀해 '제라두현'이 되주길 바란다는 장미빛 전망 뿐이다. 이게 과연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K리그에서 활약하던 당시의 김두현은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자신의 공격 본능을 마음껏 뽐냈었다. '제라두현'이라는 별명 또한 이때 얻은 것이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지는 김두현의 모습은 '제라두현'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지경이다. 볼 키핑 능력은 그런대로 무난한 수준이지만 무엇보다 EPL의 거친 몸싸움을 감당할 피지컬이 김두현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기가 6, 70분대에 접어들면 제대로 뛰지 못한다는 것이 프리미어리그 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마디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팬들은 알비온의 사령탑인 토니 모브레이 감독을 비난하기도 한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된 포지션인 김두현을 왜 자꾸 윙 포워드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놓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선수의 입장으로만 접근한 지적이다. 실제로 김두현은 아스날과의 리그 개막전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모브레이 감독은 선수를 2선인 수비형 미드필더 쪽으로 후방 배치시켰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지원을 받아 원활한 공격을 펼칠 수 없는 알비온의 전술상에서 김두현을 그대로 낭비하는 것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려 상대를 적절히 압박하도록 하는 한편, 그의 장기인 패스 능력을 이용해 팀의 공수 능력을 조율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나선 김두현은 감독의 이러한 의중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수비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공격에만 치중했을 뿐이었다. 간신히 공을 잡더라도 상대 선수들과의 몸싸움에 밀려 힘없이 주도권을 빼앗길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국내 언론서는 "김두현의 능력을 죽이고 있는 모브레이 감독의 전술"이라는 기사까지 써내며 선수의 부진을 감독과 전술탓으로 돌렸다. 감독의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김두현에 대한 지적은 단 한 줄도 없었을 뿐더러 되려 "닥치고 김두현을 공미에 기용하라"라며 어린아이처럼 억지만 부릴 뿐이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두현이 자신의 2군행을 자청했다. 김두현의 에이전트에 의하면 토니 모브레이 감독이 선수의 멀티 플레이어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팀 분위기가 가라앉아 김두현의 이번 2군행을 많이 아쉬워했지만 그럼에도 선수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단다. 김두현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도대체 어떤 멀티 플레이어적인 능력을 보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에이전트가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믿을 뿐이지만 뭔가 조금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알비온은 현재 리그에서 6승 4무 17패의 성적으로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곧 있을 아스날과의 홈 경기에서 승리해 승점 3점을 얻는다 하더라도 강등권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위치다. 감독들이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믿는 철저한 베스트 11으로 팀을 꾸린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김두현에게 닥친 지금의 2군행은 '자청'이 아닌 '강등'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설득력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언론과 일부 성급한 팬들은 김두현의 본래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만을 외치며 선수를 두둔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토니 모브레이 감독 또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감독이 선수의 주 포지션조차 파악하지 못해 자꾸만 그를 엉뚱한 포지션에 기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제 '제라두현'이라는 선수의 별명은 그만 잊을 때가 됐다. 김두현은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가 아니라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의 김두현 그 자신이 되어야 한다. 선수의 1군행도 비로소 그때서야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와 발전이 절실한 상황이다.